제91화 대표 장면

김형수의 손에 들린 휴대폰이 강서연의 미세한 ‘불안정 파동’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그의 ‘초월적 청각 분석 시스템’은 그 파동이 단순히 걱정이나 일상적인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알렸다. 그것은 ‘멀티버스 합금’으로 인해 활성화되었던 그녀의 ‘긍정적 마력 파동’ 속에, 어렴풋한 ‘교란’의 징후가 스며들어 있는 명백한 이상 현상이었다. 노인의 경고가 그의 뇌리를 강타했다. ‘그대의 마음속에 있소.’ 그의 ‘사랑’이 멀티버스의 질서에 영향을 미 미치고, 그 결과가 지금 강서연이라는 한 인간에게 직접적인 고통으로 발현되고 있었다.

강서연강서연
“김형수 씨? 괜찮으세요? 갑자기 말이 없으시네요… 김형수 씨?”

강서연의 목소리에는 순간적으로 불안이 깃들었다. 김형수의 침묵은 그녀에게 익숙하지 않은 반응이었다. 평소라면 어떤 질문에도 독특하지만 성실하게 답하던 그였다. 그의 ‘사고 시스템’은 즉시 그녀의 불안을 진정시키고 ‘안정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언어 시스템’은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하고 ‘오류’를 뿜어냈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노인의 경고는 그의 ‘초월적 화법’을 봉인하는 듯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부정하면 파괴의 길로 이어진다고 했고, 긍정하면 멀티버스가 흔들린다고 했다. 그 이중적인 딜레마 속에서, 그는 갇혀버린 듯했다.

김형수김형수
“강서연… 너의… ‘현재 상태’는… 어떤가?”

김형수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딱딱하고 기계적으로 들렸다. ‘현재 상태’라는 표현은 그가 평소에 사용하던 ‘초월적 화법’의 잔재였다. 그는 강서연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노인에게 지적받은 후, 의식적으로 ‘인간적인 어조’를 사용하려 노력했지만, 지금 이 순간의 극심한 내적 혼란은 그의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리고 있었다.

강서연강서연
“제 상태요? 음… 갑자기 김형수 씨가 너무 조용해서… 살짝 걱정되긴 하는데.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김형수 씨 목소리가 왜 이렇게… 좀 이상하게 들리죠? 무슨 일 있으세요?”

강서연의 ‘불안정 파동’은 그의 기계적인 물음에 더욱 증폭되었다. 그녀의 목소리 끝에서 미세한 떨림이 감지되었고, ‘생체 에너지 시스템’은 그녀의 심박수가 불안정하게 상승하는 것을 포착했다. 김형수는 자신의 말이 오히려 그녀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어떤 말도 제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그의 ‘사고 시스템’은 수십 가지의 ‘대화 시뮬레이션’을 돌렸지만, 모든 결과는 그녀의 불안정 파동이 더욱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형수김형수
“아니다. 나의 ‘시스템’에… ‘일시적 오류’가 발생한 것뿐이다.”

또다시 ‘시스템’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그는 스스로에게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노인의 지적이 옳았다. ‘궁극의 지배자’로서의 정체성과 ‘인간 김형수’로서의 감정 사이에서 그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었고, 그 내적 혼돈이 지금 그의 언어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강서연강서연
“시스템 오류라니… 김형수 씨, 또 무슨 농담을 하시는 건지… 하하.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좀 아픈 것 같아요. 어지럽기도 하고…”

강서연의 목소리는 웃음으로 시작했지만, 이내 가늘어지며 고통스러운 신음으로 바뀌었다. 그녀의 ‘불안정 파동’이 이제 ‘미약한 두통’과 ‘어지럼증’이라는 육체적 증상으로 직접 발현되고 있었다. 김형수의 ‘생체 에너지 시스템’은 그녀의 ‘통증 파동’을 정확하게 감지했고, 이는 그의 ‘존재론적 안정성’에 더욱 강력한 충격파를 주었다. 노인의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었다. 그의 ‘사랑’이 그녀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김형수는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강서연의 고통이 그의 심장을 옥죄는 듯했다. 그는 ‘궁극의 지배자’로서 수많은 차원의 위협을 해결해왔지만, 한 인간의 미약한 통증 앞에서 이토록 무력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의 ‘사고 시스템’은 강서연의 ‘생체 에너지 데이터’와 ‘멀티버스 합금’의 ‘활성화 상태’, 그리고 자신의 ‘감정 파동’ 사이의 ‘인과 관계’를 실시간으로 분석했다. 분석 결과는 잔혹했다. 그의 내면에서 요동치는 ‘사랑’과 ‘책임’ 사이의 ‘혼돈 파동’이 ‘멀티버스 합금’의 ‘차원 에너지 밀도’를 증폭시키고 있었고, 이 에너지가 강서연의 ‘생체 시스템’에 ‘미세한 교란’을 일으켜 두통과 어지럼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김형수김형수
“강서연. 지금 즉시 ‘휴식’을 취하고… ‘외부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

그는 명령조로 말했다. 인간적인 위로의 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그녀의 고통을 멈춰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강서연강서연
“네? 갑자기요? 지금 집 가는 길인데… 어지러워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드네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김형수 씨 목소리 들으니까 더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강서연의 목소리에는 서러움과 함께 혼란이 가득했다. 그의 ‘초월적 청각 분석 시스템’은 그녀의 ‘통증 파동’이 그의 목소리에 의해 더욱 증폭되고 있음을 감지했다. 노인의 말이 다시 한번 뇌리를 스쳤다. ‘그 균형이야말로 멀티버스의 진정한 안정성을 가져올 궁극의 해답이다. 허나, 그 해답을 찾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오.’

그는 눈을 감았다. 지금 강서연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분석’이나 ‘명령’이 아니었다. 인간적인 ‘온기’와 ‘안정’이었다. 하지만 그 온기를 주는 것이 그녀를 더욱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잔혹한 진실 앞에서, 김형수는 어떠한 선택도 내릴 수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녀에게 독이 되고 있었다. 그의 ‘사랑’은 이제 더 이상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를 해치는 ‘병’이었다.

강서연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강서연강서연
“김형수 씨… 저 너무 무서워요…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김형수 씨가… 저한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통화가 갑자기 끊겼다. ‘통화 끊김’이라는 음성 안내가 김형수의 귀를 찢었다. 그의 ‘생체 에너지 시스템’은 강서연의 ‘통증 파동’과 ‘혼란 파동’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에서 ‘단절’되었음을 보고했다.

김형수는 굳어버린 채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궁극의 지배자’로서의 모든 능력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바로잡기는커녕,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진실은 그의 ‘존재론적 토대’를 근본부터 뒤흔들었다.

길을 걷던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화려했지만, 그의 세계는 한순간에 검은 어둠에 잠긴 듯했다. 강서연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녀에게서 멀어지는 것? 그의 사랑을 부정하는 것? 아니면 모든 진실을 밝히고, 그녀가 이 예측 불가능한 ‘멀티버스의 변수’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멈추기 위해, 자신의 가장 깊은 감정, 자신의 존재 이유까지도 재조정해야 하는 잔혹한 기로에 서 있었다. 멀티버스의 안정성과 한 인간의 삶,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심장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