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수는 손바닥에서 피어난 ‘작은 불덩이’를 조심스럽게 동굴 바닥에 내려놓았다. 붉고 따스한 불꽃이 춤추며 주변의 어둠을 밀어냈다. 축축하고 차가웠던 동굴 공기가 불꽃의 온기 덕분에 아주 미약하게나마 누그러지는 듯했다. 그의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피로감이 잠시나마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휴… 좋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빛이 있으니…”
그는 바위 벽에 등을 기댔다. 방금 전까지 고블린과 사투를 벌였던 일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졌다. 그의 손은 여전히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공포보다는 생존에 대한 갈망이 더 컸다. ‘생활 마법’ 스킬을 2레벨로 올린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정화된 물’로 갈증을 해소했고, 이 ‘작은 불덩이’는 어둠 속에서 그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통찰’ 스킬을 사용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빛이 닿는 범위 내의 바위, 이끼, 심지어 공기 흐름까지 그의 시야에 정보창으로 나타났다.
`[동굴 벽]: 견고한 암석층. 미약한 철광석 성분 함유. 고대 생명체의 화석 잔류.`
`[희미하게 빛나는 이끼]: 특정 마력에 반응하여 발광. 식용 불가. 약한 독성 존재.`
`[동굴 공기]: 습하고 무거움. 환기 부족. 미약한 유독 가스(메탄) 검출.`
철광석 성분이나 고대 생명체의 화석 같은 정보는 지금 당장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끼는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었고, 동굴 공기마저 좋지 않았다. 숨쉬기가 조금 더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문제는 역시… 식량인가.”
물은 ‘정화된 물’ 스킬로 당분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음식은 전혀 없었다. 버스 사고 이전의 마지막 기억은 편의점 도시락이나 치킨이었다. 지금은 눈앞의 거친 이끼조차도 먹을 수 없는 처지였다. 며칠을 굶을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인벤토리 창을 다시 열었다. ‘고블린의 이빨’과 ‘고블린의 가죽’. 이것들도 먹을 수는 없었다.
“무기나 방어구 재료라고는 하는데… 이걸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고블린의 이빨을 만져보았다. 날카롭고 단단했다. 이걸 몽둥이 끝에 박으면 좀 더 나은 무기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에게는 이빨을 가공하거나 다른 물건과 연결할 도구가 없었다. 망치나 끈 같은 기본적인 도구조차도 절실했다. 마치 현대 문명의 모든 편의가 사라진 원시 시대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평범한 회사원 김형수. 퇴근 후에는 드라마나 보며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것이 낙이었다. 주말에는 밀린 잠을 자거나 동네 뒷산에 오르는 게 전부였다. ‘대리님’이라는 직함조차 버거웠던 그가, 이제는 괴물과 싸우고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꿈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뺨을 꼬집었을 때의 통증은 너무나 생생했다.
“돌아갈 방법… 반드시 찾아야 해. 그러려면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그의 마음속에 강한 의지가 다시금 피어올랐다. 막연한 두려움 대신, 차분한 냉철함이 자리 잡았다. 내일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했다.
**첫째, 식량 확보.** 동굴 안에서 찾기 어렵다면, 결국 숲으로 나가야 한다. 숲 속에는 먹을 수 있는 약초나 과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위험도 함께 따를 것이다. ‘통찰’ 스킬을 활용하여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다.
**둘째, 안전한 은신처 확보.** 이 동굴이 완벽하게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마물 서식 가능성 높음’이라는 메시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만약 더 깊은 곳에 강한 마물이 있다면? 아니면 다른 고블린들이 찾아올 수도 있었다.
**셋째, 전투력 강화.** 지금 그에게는 맨몸과 나뭇가지뿐이었다. ‘초보 검술’ 스킬은 있지만, 정작 검이 없었다. 최소한 고블린의 이빨을 이용해 날카로운 창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그는 ‘작은 불덩이’가 비추는 동굴 바닥을 응시했다. ‘작은 샘’이 있다고 했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샘물이 있다면 ‘정화된 물’ 스킬을 덜 사용하고 마나를 아낄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불꽃을 들고 동굴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기로 했다.
“작은 샘… 그걸 먼저 찾아봐야겠어.”
불꽃을 든 채, 그의 그림자가 동굴 벽에 길게 드리워졌다. 동굴의 안쪽은 바깥쪽보다 훨씬 더 어둡고 습했다. 그의 발걸음이 돌멩이와 흙먼지를 밟으며 미세한 소리를 냈다. ‘통찰’ 스킬을 계속 활성화하며 주변을 살폈다.
“뭔가 있어…”
그의 시야에 희미한 정보창이 나타났다. 조금 전보다 더 깊은 곳이었다.
`[작은 샘]: 깨끗한 지하수. 생명력이 미약하게 흐름. 주변 바위 틈에 미량의 광물성분 결정체 발견.`
`[동굴 박쥐 떼]: 휴식 중. 소리에 민감. 위협 감지 시 공격적 성향.`
“박쥐…?”
머리 위쪽 바위틈에 거꾸로 매달린 채 잠든 박쥐 떼가 보였다. 다행히 아직은 잠들어 있는 듯했다. 그는 숨을 죽이고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샘 쪽으로 다가갔다. 박쥐 떼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작은 불덩이’의 빛마저도 조심스러웠다.
마침내, 동굴 깊숙한 곳, 바위틈에서 맑은 물줄기가 졸졸 흐르는 작은 샘을 발견했다. 물은 투명했고, 바닥에는 깨끗한 모래가 깔려 있었다. 그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손으로 물을 떠 마셨다. 차갑고 시원한 물이 그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정화된 물’ 스킬로 만든 물만큼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마실 만했다.
“살았다… 적어도 물 걱정은 당분간 없겠어.”
물가에서 그는 주변 바위틈에 반짝이는 작은 결정체들을 발견했다. ‘통찰’을 사용했다.
`[미량의 마력 결정]: 마나를 미약하게 회복시켜 줄 수 있는 광물. 가공을 통해 마나 물약 제작 가능. 소량의 마력 잔류.`
“마나 결정? 이런 것도 있구나…”
그는 조심스럽게 몇 개의 결정체를 채집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 차가운 기운과 함께 희미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는 듯했다. 당장 마나 물약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는 다시 박쥐 떼에게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으로 돌아와 ‘작은 불덩이’를 내려놓았다. 이제 잠시 눈을 붙여야 했다. 내일을 위해서는 몸을 회복하고, 더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고블린과의 전투, 이세계로의 전이, 스킬과 레벨…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그는 이제 단순한 ‘대리 김형수’가 아니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여행자 김형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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