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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진 고블린 시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그를 죽이려 달려들었던 흉측한 괴물은 이제 피 묻은 몽둥이와 함께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는 돌멩이의 차가운 감촉, 그리고 둔탁한 타격감이 생생하게 뇌리에 박혔다. 그의 인생에서 누군가를 때려본 적도, 하물며 죽여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괴물을 죽였다. 그것도 이빨과 손톱 외에 어떤 방어 수단도 없는 맨몸으로.

김형수 “내가… 내가 고블린을 죽였어…”

목소리가 찢어질 듯이 갈라져 나왔다. 믿을 수 없는 현실, 그러나 너무나도 명백한 결과였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책감, 그리고 앞으로 또 이런 일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온몸의 힘이 쭉 빠지면서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여전히 발광하듯 뛰고 있었고, 귓가에는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그의 셔츠는 식은땀으로 흥건했고, 엉망이 된 머리카락은 얼굴에 들러붙어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서서히 몸의 떨림이 잦아들고,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생전 처음 보는 숲 속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해는 이미 중천을 넘어선 듯했으나,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은 마치 다른 세상의 색을 띠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당장이라도 또 다른 위협이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일단, 안전한 곳을 찾아야 했다. 몸을 숨기고,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곳.

김형수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순 없어. 움직여야 해.”

쓰러진 고블린 시체는 이제 어둠 속으로 사라진 듯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그를 움직이게 했다. 그는 사방을 경계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숲은 낯선 소리들로 가득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알 수 없는 곤충들의 울음소리. 하나하나가 모두 위협으로 느껴졌다.

그는 ‘통찰’ 스킬을 다시 사용해보았다. 시야가 잠시 흐려지더니, 주변의 나무들과 덤불, 심지어 밟고 지나가는 돌멩이에도 정보가 나타났다.

`[미지의 덩굴]: 독성이 강함. 접촉 주의.`
`[울창한 관목림]: 은신에 용이함. 맹수 서식 가능성 있음.`
`[차갑게 식은 바위]: 표면에 이끼가 자생. 미약한 마력 흐름 감지.`

독성이 강한 덩굴을 피하고, 맹수 서식 가능성이 있다는 관목림은 조심스럽게 지나쳤다. 그러다 문득, 그의 시야에 희미하게 빛나는 동굴 입구 같은 것이 포착되었다. 바위와 덩굴로 가려져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었다.

김형수 “저기… 저기가 괜찮을지도.”

그는 조심스럽게 동굴 쪽으로 다가갔다. 입구는 좁았지만, 안쪽은 생각보다 깊어 보였다. ‘통찰’ 스킬을 다시 한번 사용했다.

`[음침한 동굴]: 깊숙한 곳에 작은 샘 존재. 마물 서식 가능성 높음. 내부에서 미약한 기운 감지.`

마물 서식 가능성이라는 문구에 등골이 서늘했지만, 동시에 ‘작은 샘’이라는 정보가 그의 눈길을 끌었다. 목이 너무 말랐다.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숲 속에서 밤을 보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동굴 안이 나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적어도 사방이 막혀있으니 뒤에서 기습당할 일은 없을 터였다.

김형수 “그래, 일단 들어가 보자. 조심하면서.”

그는 입구에서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검은 없었지만, 적어도 고블린의 몽둥이보다는 길었다.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동굴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안은 예상대로 어두웠고, 축축한 흙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습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동굴 벽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이끼들이 붙어 있어 아주 조금의 시야를 확보해주었다.

김형수 “휴… 아무것도 없네. 일단 여기로.”

동굴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바위 벽에 기대어 몸을 뉘였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자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은 온통 혼란스러웠다. 이세계, 고블린, 스킬, 레벨… 평범했던 그의 일상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김형수 “대체 왜 이런 일이 나한테… 내가 뭘 잘못했다고…”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버스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있었을까? 아니, 애초에 그 사고가 이세계로 넘어오는 통로였던 것일까? 수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어느 것 하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그는 이제 이곳에 홀로 존재하며, 살기 위해서는 이곳의 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상태창을 열었다. 투명한 창이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

`[종족: 인간]`
`[레벨: 2]`
`[경험치: 0/50 (다음 레벨까지)]`
`[체력: 85/100 (피로 누적)]`
`[마나: 50/50]`
`[힘: 10]`
`[민첩: 8]`
`[지능: 15]`
`[운: 5]`
`[스킬 포인트: 1]`

레벨이 2가 되면서 다음 레벨까지 필요한 경험치가 늘어났다. 체력은 고블린과의 싸움과 이동으로 인해 소모된 상태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킬 포인트: 1’이었다. 이 스킬 포인트를 어디에 사용해야 할까? 그는 스킬 창을 열었다.

`[스킬 목록]`
`[1. 통찰 (Insight) – 액티브 스킬]: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여 정보를 획득합니다. (쿨타임: 10초) [레벨 1]`
`[2. 생활 마법 (Basic Life Magic) – 액티브 스킬]: 아주 기초적인 생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 작은 불꽃, 물 한 잔) [레벨 1]`
`[3. 초보 검술 (Beginner Swordsmanship) – 패시브 스킬]: 검을 다루는 기본 능력이 향상됩니다. [레벨 1]`

각 스킬 옆에는 `[레벨 1]`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스킬 포인트를 사용하면 이 스킬들의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것 같았다.
‘통찰’은 이미 유용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정보를 얻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생활 마법’은 작은 불꽃이나 물 한 잔이라고 했으니, 어두운 동굴에서 불을 밝히거나 목마름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초보 검술’은 당장 검이 없지만, 전투 능력을 올려주는 패시브 스킬이니 나중에라도 유용할 터였다. 그는 고블린을 맨손으로 죽였으니, 이 스킬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형수 “하나를 올려야 한다면…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뭘까? 정보? 아니면 안전? 아니면 기본적인 욕구 해결?”

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둠 속에서 그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극심한 피로감, 그리고 타는 듯한 갈증이 밀려왔다. 동굴 안에는 작은 샘이 있다고 했으니, 물은 해결될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둠? 혹은 더 많은 정보?

김형수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리고 언제 또 괴물이 나타날지 모르잖아. 일단 ‘생활 마법’을 올려서 빛을 확보해야겠어.”

그는 ‘생활 마법’을 선택했다. `[스킬 포인트 1개를 생활 마법에 사용하시겠습니까?]`라는 메시지가 떠올랐고, 그는 ‘예’를 선택했다.

`[생활 마법 (Basic Life Magic) 스킬 레벨이 2로 상승했습니다!]`
`[새로운 능력: ‘작은 불덩이 (Small Fireball)’ 사용 가능. 마나 5 소모]`
`[새로운 능력: ‘정화된 물 (Purified Water)’ 생성 가능. 마나 3 소모]`

김형수 “오… 불덩이랑 물까지?”

생각보다 훨씬 유용한 스킬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작은 불덩이’는 전투에도 쓸 수 있을 것 같았고, ‘정화된 물’은 동굴 안의 샘물을 마시지 못할 경우를 대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즉시 ‘정화된 물’을 사용해보았다.

김형수 “정화된 물…”

마나 3이 소모되면서 그의 손바닥 위에 투명한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점차 그 크기가 커지더니, 그의 손바닥 안에 한 모금 정도의 깨끗한 물이 생겨났다. 그는 망설임 없이 물을 들이켰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시원하고 깨끗한 물의 감촉에 온몸의 갈증이 해소되는 듯했다.

김형수 “살 것 같네. 이걸로 일단 버틸 수 있겠어.”

그는 인벤토리 창을 열었다. 고블린을 잡고 얻은 아이템들이 보였다.
`[고블린의 이빨 (Goblin’s Tooth) 1개]`
`[고블린의 가죽 (Goblin’s Leather) 1개]`

그는 ‘통찰’ 스킬을 사용하여 ‘고블린의 이빨’에 집중했다.

`[고블린의 이빨 (Goblin’s Tooth)]`
`[설명: 날카롭고 단단한 고블린의 이빨. 무기 제작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음. 또는 가공을 통해 날카로운 도구로 활용 가능.]`

이어서 ‘고블린의 가죽’에도 ‘통찰’을 사용했다.

`[고블린의 가죽 (Goblin’s Leather)]`
`[설명: 거칠고 질긴 고블린의 가죽. 방어구 제작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음. 또는 얇게 가공하여 끈 등으로 활용 가능.]`

김형수 “무기나 방어구 재료라… 이걸로 뭔가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가 뭘 할 줄 알아야지.”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웹소설 같은 이세계라지만, 갑자기 그에게 대장장이 기술이나 재봉 기술이 생길 리는 없었다. 하지만 재료가 있다는 것은 언젠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다. 어쩌면 이 세계에는 이런 재료들을 가공해주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다시 동굴 내부를 살펴봤다. ‘작은 불덩이’ 스킬을 사용해 볼 차례였다.
김형수 “작은 불덩이.”

마나 5가 소모되면서 그의 손바닥에서 주먹만 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동시에, 차가웠던 동굴 공기를 미약하게나마 데워주었다. 불꽃은 그의 의지에 따라 크기가 조절되는 듯했다. 그는 불꽃을 동굴 바닥에 내려놓았다. 바닥의 이끼들이 희미하게 타는 듯한 소리를 냈지만, 불꽃은 안정적으로 타올랐다.

김형수 “좋아… 이 정도면 밤을 새울 수 있겠어. 불꽃이 있으니 적어도 어둠 속에서 허둥댈 일은 없겠군.”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는 불꽃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제 더 이상 지친 회사원이 아니었다. 그는 이세계에 떨어진 생존자였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어쩌면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도 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강해져야 했다. 스킬을 활용하고, 정보를 얻고, 싸우고, 살아남아야 했다.

그의 눈빛이 전과는 다르게 단단해졌다. 막연한 공포 대신, 생존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